1. 미국의 법률과 대법원
미국은 연방제 국가입니다. 중국에도 있는 '성省'의 개념은 미국에서 '주 province' 인데, 각 주마다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구조는 원래 하나의 통일된 구조가 아니라, 서로 서로 다른 성들이 스스로의 권한과 체계를 유지한채로 한 곳으로 모인것으로 보는 것이 미국이라는 연방제 국가를 이해하는데 쉬운 이해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정부만의 권한으로는 국가를 움직이는 거대한 시스템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없기때문에 연방정부가 상위개념으로 있으며, 이 연방정부에는 미국의 대법원도 있습니다. 대법원은 말 그 자체로 성단위 법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최종적 법률 판단을 하는 곳입니다. 워싱턴D.C 에 있는 대법원은 미국전체의 헌법과 하위 법률에 대한 해석의 권한을 가지는데, 총 9명의 대법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법원에서 한번 판결이 나면 되돌리수 없기에, 이들의 판결에 대한 '무게감'은 어느 정치권력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특이한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대법관의 종신제' 입니다. 한번 임명된 대법관은 그 또는 그녀가 사망할때까지 종신직입니다. 제가 왜 그 또는 그녀라는 단어로 대법관을 설명했는지는 뒷부분에 추가 설명을 하겠습니다.종신직 대법관은 미국으로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대법관들은 첨예한 미국의 상원, 하원 및 기타 이익단체에 종신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절대 휘둘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부나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믿고 신뢰하는 '공평한 법률의 원칙'에 따라 판결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대법관의 판결에 대하여 건드릴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다보니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은 한 명이 사망하여 추가로 신임 대법관을 임명할 때 미국내부의 이익단체나 상,하원 의원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전쟁처럼 자신들과 의견이 비슷한 대법관 내세우기를 노력합니다. 또 한편 종신직 대법관은 매우 자존심이 높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이며, 오히려 대통령보다도 훨씬 명예가 높은 사람들로
인식됩니다. 대법관들은 다른 모임에는 거의 참석도 하지 않으며, 참석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입니다.
2. 린다그린 하우스 Linda Greenhouse
그런데 지난 2008년 출장으로 참석하지 못한 두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영광스럽다'고 하면서 어떤 한 기자의 퇴임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치인이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단지 한명의 '신문기자'를 위해서 모인 이 일은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이 날 미국의 대법관들이 모두 모여서 퇴임을 축하해 준 사람이 바로 '린다 그린 하우스Linda Greenhouse' 입니다. 그녀는 원래 매우 평범한 지방대학 출신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우연히 '보스턴헤럴드'라는 신문사에서 '기자'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린다는 자신이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은 매우 심각한 남녀 차별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법조계 뿐만 아니라, 언론계에서는 그 남녀 차별이 유독 심각했던 때입니다.
1947년생인 그녀로서는 1960~70년대 미국사회의 남녀 차별을 고스란히 받아내어야 했고, 그 결과 모든 신문사의 시험에 낙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뜻밖의 기회로 '뉴욕타임지'의 기자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이유는 베트남전때문이었습니다. 베트남전이 발발 되자, 수많은 기자들과 남자 대학생들이 전쟁에 징집되거나 파견되었고, 그저 '일손이 부족해서' 취직의 기회가 생겼던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남자들만이 주류로 자리잡은 언론계에서 그것도 법조계의 기자역할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취재를 받아주는 법관들도 없었고, 또한 법률을 전공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법률 기초지식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조계 기자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좌절할만도 한데 린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합니다. 소위 법원기자는 법원 판결이 나오는 바로 그순간 ! 가장 빠른 정보를 가지고 기사를 써야 '특종'이라는것을 낼 수 있습니다. 어차피 특종의 근처도 갈 수없었던 린다는 남들이 다 소개하고 난 법원판결의 결과를 가지고 다른 분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3. 진정한 언론인이란 무엇인가?
그녀는 이미 판결난 법조문을 수십번, 심지어 수백번을 읽고 또 읽은 뒤 판결문 뒤에 숨어 있는 '행간의 뜻'을 밝혀내고 그것들을 가지고 다시 분석을 하여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올바른 판결과 올바르지 않은 판결 그리고 법리적 모순점을 하나 하나씩 심도 있는 분석기사를 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원래 법률용어자체가 난해하여 일반인들은 전혀 판결문을 읽어내지도 못하였던 상황에서 , 린다의 이런 판결문에 대한 해석기사는 새로운 개념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법원의 판결은 기본이고, 판결이후 린다가 그 판결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하는지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린다의 분석기사를 보고 나서야, 이번 판결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를 납득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그렇게 그녀는 30년간 연방대법원 출입기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결정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한 연방대법관이 중요한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의 판결이 끝난후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우리의 판결에 대하여 린다가 칭찬해주기를 기대한다 ' 라는 말을 하게 되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이미 매우 유명한 법조기자였지만, 그래도 그토록 명예심이 높은 대법관들도 '린다의 분석'에 대하여 귀를 쫑긋 하고 있다는 이 말은 여러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마침내 '그린하우스 효과 '라는 단어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30년간 3천건 이상의 판결문에 대한 분석기사를 썼던 '린다 그린하우스'는 이제는 미국에서 법률가를 길러내는 '로스쿨' 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필수 학습 교제이며, 법률가들보다 더 존경받는 명예로운 기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때 신문사에 노크할 기회도 없었던 지방대 출신의 법률 비전문가였던 그녀가, 평생을 남들이 하지 않는 노력을 통해서 오로지 정확한 법률에 대한 알권리를 제공하고자 했던 그녀의 마음은 국민들에게 그리고 법관들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1998년에는 최고의 언론인에게 주어지는 '퓰리처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국가는 법원이 있습니다. 법의 시스템이 있기에 이것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사법기관으로서 법원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법의 기본 철학은 '법에 의한 형평성' 일것입니다.그러나 난해한 법률과 법률자체가 기득권이 될 수 있음을 여러가지 사례로 볼 수 있는 오늘날, 린다 그린하우스 같은 기자의 존재는 그래도 법을 살아 숨쉬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여성기자'로서 법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기자'가 되기까지의 '법 이전의 사람의 마음, 즉 '린다 그린하우스'의 법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대법관을 '그'와 '그녀'로 표현한 이유는 원래 대법관이 남자들만 있었기에 영어로 '미스터 저스티스 MR.Justice' 라고 표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 최초로 여성이 대법관에 임명되자 그제서야 '저스티스 Justice'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문 대명사 하나에도 미미하나마 남녀의 구분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