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수의 역사
누들로드(NUDDLE ROAD)라는 다큐멘터리가 한때 유행했었습니다. 전세계의 면의 기원을 찾는 내용이었는데, 국수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국수의 기원은 약 6천년 전까지 올라갑니다. 1991년에 신장위구르자치구 화염산(火焰山)이라는 곳에서 고속도로를 공사하다가, 약 2500년이나 보존되었던 무덤을 하나 발견하게되었습니다. 무덤에는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미이라등 다수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음식의 화석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좁쌀로 만든 국수의 화석이었습니다. 참고로 화염산은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일행이 큰 불로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산을 만나 어려움을 겪자, 파초선을 빌려서 불을 끄고 건너갔다는 바로 그산입니다. 약 2500년 동안이나 국수의 화석이 보존되었던 이유는 신장 위구르지역의 지리적 특성상, 건조하고 메마른 기후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의 서북부 메마른 땅에서 발견된 국수라는 문화는 이후 약 2천년 전부터 중국 중원의 발달로 내륙으로 전파되고, 대규모의 밀농사를 통하여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국수로 완성되었습니다. 동양의 국수는 서양의 파스타와 차이가 있는데, 국수는 국물이 있으나 파스타는 국물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실질적으로 국수와 파스타는 그 기원을 같이한다는 것이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국수를 만들때는 양뼈나 돼지뼈로 국물을 우려내고, 반면에 한국의 국수는 소나 닭뼈로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대부분이고, 일본은 가다랑어포를 이용하여 국물을 우려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0년도 넘는 중국 국수는 문헌에는 약 1200종류나 다양한 국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라고 하면 대략 6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2. 중국의 6대 국수
ㅇ 베이징 짜장면(北京炸酱面) : 자장면에서 사용하는 자장의 기원은 원래 산동지역의 첨면장(甜面酱)입니다. 조선시대말기 인천항구의 개항이 되면서, 산동사람들이 대다수 인천으로 들어와서 이 첨면장을 볶아서 한국식으로 만든 짜장면은 현재 한국인의 쏘울 푸드인 짜장면이지만, 중국에는 북경자장면이 유명합니다. 청나라 말기 악녀로 유명한 서태후시절, 중국의 각 지방에서는 서양의 침략을 직접 민중이 막나내고자하는 대규모 운동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의화단 운동'이라고 합니다. 각 지방의 의화단들은 전통 무술은 쿵푸를 단력하면, 총알도 막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조직이 되어서 급격히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때마침 청나라에 침략한 영국, 프랑스 등 서양의 세력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살육하면서, 오히려 서양 8개국이 의화단을 없애기 위하여 연합국을 형성하여 청나라 수도 자금성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자금성의 공격에 피난을 가야했던 서태후는 피난길에서 배고픔을 견딜 수 없이 고생을 하였는데, 그때 우연히 길가에 작은 국수집에서 나오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먹어본 것이 바로 자장면이었습니다. 훗날 서태후는 다시 자금성으로 들어올때 그 집 주방장을 궁으로 데리고 와서 자주 이 면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황제와 황후가 먹는 국수로 유명해져서 지금의 베이징 자장면이 되었습니다.
ㅇ 산시 도삭면 (陕西刀削面): 도삭면은 칼로 베어내는 면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칼국수로 부르는 면과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산시성의 수도 태원太原 에서는 매년 도삭면 경연대회를 열정도로 산시성은 도삭면으로 유명합니다. 이 도삭면의 기원은 원나라였습니다. 중원을 점령했던 이민족이었던 원나라는 한족의 반란을 항상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특단의 조치로써 한족의 모든 집안에 있는 무기가 될만한것들을 싹쓸이로 압수하였는데, 심지어 주방에서 쓰는 부억칼도 사용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0가구에 1개의 공용식칼만을 허락했습니다. 칼이 없으니 음식만들기가 불편했던 백성들이 작은 쇳조각 같은 것을 이용하여, 툭툭 베어내면서 만든 국수요리가 바로 도삭면입니다. 훗날 명나라 황제가 된 주원장은 원래 고향이 산시성이었고, 매우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황제가 된 이후에도 어릴적 맛있게 먹었던 도삭면을 즐겨 먹으면서, 백성들에게 도삭면이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ㅇ 스촨 딴딴면 (四川担担面): 사천에는 딴딴면이 유명합니다. 원래는 국물없이 비벼먹는 음식이었던 딴딴면은 처음부터 유명해진것이 아니라 비교적 역사가 짧습니다. 1840년대 사천에서 행상을 하던 '진포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어깨에 면과 양념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국수장사를 하였습니다. 하루종일 면과 양념을 들고다니니, 당연히 무거운 국물은 빼고, 비벼멱을 수 있는 면을 만들어서 판매를 했습니다. 훗날 이 매콤한 비빔면이 스촨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서 유명해진 것이 바로 딴딴면입니다. 사천성 특유의 매운 고추와 매운기름, 그리고 볶은 고기와 콩이 들어간 딴딴면은 지금은 국물이 있는 면도 있으나, 가능한 비빔면으로 원래의 맛을 즐겨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고로 어깨에 맨다는 뜻의 중국어가 바로 딴 担 입니다.
ㅇ 광동 이푸면(广东 伊府面) : 이푸면은 해외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광동성 특유의 고소하고 깔끔한 면입니다. 최근 한국의 라면으로 비교하자면, 오뚜기 참께라면 같은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나라 건륭제때 이병수 (伊秉绥)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그는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을 하게되었는데, 그가 부임한 곳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강소성 양주 (江苏省 扬州)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독특한 면을 만드는 비법이 있었는데, 밀가루를 반죽할때 계란 노른자를 넣고 같이 반죽하면 면을 먹을때 그 고소함이 증가하는 것을 알게되어 집안에서 손님을 접대할때 자주 만들어서 내었다고 합니다. 강소성에서 벼슬하는 동안에도 이병수 집안에는 맛있는 국수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는 손님을 빨리 대접하기 위해서 그는 미리 반죽한 면발을 튀겨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바로 끓여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고소한 면발이 미리 한번 튀겨져서 더욱 맛이 좋아지자, 그의 성을 따서 이푸면이 유명해졌습니다.
ㅇ 란조우 라면 (兰州拉面) : 란조우 라면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입니다. 전국 어느 작은 마을에도 꼭 볼 수 있는 국수브랜드이며, 사실 브랜드라기 보다는 란조우 사람들이 중국 전역으로 흩어져서 만드는 음식인데 동일한 이름, 즉 '란조우 라면'이라는 명칭을 간판에 걸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라면은 매울 라 辣 를 사용하지만, 란조우의 라면은 반죽을 손으로 쳐서 늘인다는 뜻의 라 拉 를 사용합니다. 1915년 가난한 회족 출신 청년 마보자 马保子 라는 사람이 국수 노점을 하였는데, 그는 좀 더 맛있는 국수를 만들기 위해서 란조우에서 많이 생산되는 소고기를 말려서 국수위에 올리고, 국물 또한 소고기를 우려내어서 만든 국수를 팔았습니다. 그가 만든 국수가 유명해지면서,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와서 국수를 먹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것입니다. 란조우 라면은 闻香下马,知味停车 라고 하여, 냄새를 맡으면 말에서 내리게 되고, 맛을 알면 차를 세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다양한 맛과 향이 중국인을 사로잡아, 현재는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면요리가 되었습니다.
ㅇ 우한 러깐면 (湖南 热干面) : 후베이성 우한에서 맛볼 수 있는 러깐면热干面 은 면을 먼저 삶고, 고소한 깨기름을 발라서 말려두었다가, 끓는 물에 넣어서 삶아 먹는 국수 요리입니다. 1930년대 우한에서 노점상을 하던 이포李包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국수를 팔았는데 장사가 썩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날 유달리 장사가 안되어서 국수가 많이 남았습니다. 그는 국수를 잘 보관하여 다음날에도 다시 팔기위해서 국수를 펴서 잘 말려두었는데, 실수로 탁자위에 있는 깨기름을 국수에 엎지르게 되어 기름이 범벅이 된 국수상태로 면을 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그 국수로 면을 팔았는데, 맛을 본 손님들이 감탄을 하면서, 이 국수가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그는 마땅한 이름이 없어, 먼저 뜨겁게 삶았다가 热 다시 말렸다 干 고 하면서, 러깐면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3. 국수가 장수면 (長壽麵) 이 된 배경
기원전 156년 중국 한나라이 7대 황제 한무제때의 이야기 입니다. 한무제는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제7대 황제로, 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영토를 크게 확장한 위대한 황제였습니다. 그는 유교를 받아들여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으며, 특히 북방의 흉노를 정벌하여 서역과의 교류를 확대하여 오늘날의 중국의 영토를 확장한 위대한 황제이었으나, 매우 무서운 황제이기도 하였습니다.
한무제와 장수면(長壽麵)의 이야기
중국에서는 생일날 장수면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한나라 무제와 상관이 있습니다. 한무제는 제위기간 많은 전쟁을 벌였고, 나라를 크게 만들었지만, 백성들은 전쟁으로 많은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왕성했던 황제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체력이 떨어졌고, 그는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장수할 수 있는 음식과 약을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어느날 한무제의 생일날에 황궁의 모든 요리사는 한무제의 생일 잔치를 준비하였습니다. 항상 장수를 위하여 음식에 매우 신경을 쓰는 황제는 과거 어떤 도사로부터 장수하는 법을 물어보니, 도사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생일날 모두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야 했던 황궁의 요리사들은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중 한 요리사는 실수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너무 길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 국수를 처음 먹었을때는 먹기가 힘들어서 무척 화가난 무제는 '누가 이렇게 긴 국수를 만들었는가' 하고 물었는데, 황제가 화가 난 것을 보고 모두 겁을 먹고 있을때, 제상 한명이 나와서 설명하기를 '요순시대 황제들은 800살까지 살았는데, 얼굴이 매우 길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국수는 요순시대 황제 얼굴보다 더 길게 만들었는데, 이는 황제이 장수를 기원하는 특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말을 들은 황제는 매우 기뻐하면서 국수를 다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매년 생일마다 이 국수를 먹으며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면서, 중국에서는 생일이나 중요한 날에 장수면을 먹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중국의 황제가 생일날 국수를 먹는 풍습이 민간에게 전해지면서, 이후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생일날 국수를 먹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