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헌정사에서는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적 갈등과 대립. 그리고 독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탄핵을 받은 대통령은 윤석열까지 이제 3명이 될것이다.
탄핵은 법률상 가장 근단적인 형태이다. 한국 역사상 탄핵이 상정된 대통령은 총 세 명으로, 노무현,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제부터 이들의 탄핵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기억하자.
1.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2004년)
원인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은 정치적 대립과 선거법 위반 논란에서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열린 우리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정치적 중립성 공격을 받았다. 특히, 국회에서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이 정치 중립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공격했다. 또한 언론에서도 야댱의 내용을 매일 보도하면서 문제를 키웠고, 결국 국회에서 민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었다.
과정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제출했다. 이 소추안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표결이 진행되었다. 총 국회 재적의원 271명 중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는 즉각 정지되었으며,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 시민들은 즉각 탄핵 반대 시위를 광범위하게 전개하면서 탄핵안을 통과시킨 야당을 맹열히 비난했다. 이를 반영하듯이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열린 17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하였으며, 국민의 진정한 민심은 탄핵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결과
2004년 5월 14일 헌재는 비록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했지만, 이정도로는 탄핵 사유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국민들의 환호속에 노무현 대통령은 직무에 복귀하였으며, 역으로 탄핵 추진 세력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로인해 민주시민들의 여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권에서는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국민들은 이를 계기로 민주시민의 주인의식이 대한민국에서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2.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2016~2017년)
원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국정농단 사건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정치적 스캔들에서 시작되었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동안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과 활동계획을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 국가 정책과 인사에 깊이 개입하게 하였고, 최순실은 비선의 권한을 이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챙긴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로인해 특검이 진행되었고, (그 특검이 지금의 윤석열이다.) 박 대통령 본인의 뇌물 수수 혐의,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여러 위법 행위가 드러나면서 온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과정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최초로 JTBC에서 연일 폭로된 이후, 대한민국은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시위로 표출되었다. 매주, 매일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면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 퇴진과 비선실세의 공정한 조사를 요구했다. 더이상 민심의 거대한 촛불을 막을수 없었으며, 검찰은 특검으로 박대통령의 대통령실을 조사하고, 비선의 존재를 알렸다. 결국 국회는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쳤고, 재적의원 300명 중 234명이 찬성하여 압도적으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이때부터 국민의 힘은 자신들의 오로지 자신의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언제든지 말과 행동을 바꾸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고,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지금의 황교안을 보기 바란다)
결과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판단하며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잃게 되었으며, 당연한 수순으로 탄핵이후 형사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탄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힘을 다시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촛불의 힘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박근혜 탄핵이후 국민들은 대통령이 잘못하면 헌법과 원칙에 의하여 국민의 결정으로 탄핵시킬수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였다.
3. 윤석열 내란 사건 (2024. 12.03~ 2025. 4.4)
원인
윤석열은 정치 미숙아로서 국민의 힘에서 이재명에 대한 대항마가 없자, 어부지리로 보수의 통합에 의한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사례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의 와이프 이자 과거 행적이 상당히 의심스러운 김건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온갖 비리,소문,비정상적 행동이 대한민국과 지구 곳곳에서 뉴스를 뒤덮었다.
온 국민의 지지율은 곧두박질 쳤고, 그 과정에서 고속도로 종점 이동, 김건희의 온갖 부정부패와 이력 조작, 논문조작이 윤석열의 대통령 지지율을 더욱 낮추게 되었다. 반대로 야당으로 대변되는 민주당은 내부에 있는 수박이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선거를 통해서 대거 정리되면서, 이재명을 중심으로 민주당 역사이래 보기힘든 잘 짜여진 진영을 구축하게 되었다.
과정
22년 5월 10일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지만, 공식석상에서부터 국군통수권자와 행정과 외교의 최고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직함에 맞지 않게 다양한 실수를 범했다. 이는 야당의 공격뿐아니라 국민의 불만이 쌓이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국민과 야당과는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점점 극우 유튜버들의 이야기만 듣고, 국민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실수와 실정을 연달아 만들어왔다. 이에 국민은 낮은 지지율과 선거를 통한 압도적인 민주당의 지지로써 민심의 흐름을 보여주었지만, 대통령실은 여전히 대통령과 그의 아내 김건희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부정하면서, 소위 '입틀막', '검찰을 동원한 정적 제거', '언론탄압'등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론
2024년 12월 3일 , 최악의 경제성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윤석열은 '거듭되는 민주당의 비협조와 공산당 세력을 한방에 때려잡는다'는 이유로 군대를 통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려는 음모와 언론인들을 공격하기 위한 대한민국 최정예 특수부대를 자신의 국민와 기관에 보냈다. 기적에 기적을 더하여 국회는 '비상계엄해지'를 선언했고, 비상계엄 선고 하루만에 계엄선포는 무산되었다. 국회에서는 격렬한 정쟁끝에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온국민은 거리에서 박근혜때의 촛불에서 젊은 세대의 응원봉으로 바뀐 거리의 민주주의가 온 나라를 뒤덮었지만, 단 한번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감옥에서 나오기까지 했다. 이과정에서 검찰, 판사의 사법부는 온국민의 마음속에 분노를 일으켰으며, 극우로 대변되는 탄핵반대 세력까지 거리로 나오면서, 대한민국은 모든 행정, 외교, 정치가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온국민의 염원과 달리 역사상 유래없는 판결지연을 하다가, 마침내 25년 4월 4일 오전 11시에 판결을 하게 된다. 또한 대통령 부재시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은 헌재에서 명백하게 불법이라고 판결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법을 어겨가면서 임명하지 않음으로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또 어쩌면 그들도 내란의 공범일수 밖에 없음을 짐작하게 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이는 헌정사상 유래없는 일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많은 시스템상과 법률상의 문제를 수면위로 들여냈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선고는 이제 이틀 남았다.